끄적거림

바다는 그렇게 울어야 하나

靑波 2014. 12. 6. 22:06

바다는 그렇게 울어야 하나

      

                  채   환   석

 

 

우리의 바다는 항상 자랑스러웠다

동아시아의 해상왕인 장보고가 그러했고 망국의 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바다를 지켜낸 이순신장군이 있어 자긍심을 갖게 해준 바다인데

웬일인지 올해에는 그야말로 울음이 그치지 않으니 그저 망연할 뿐이다

봄이 왔나 싶을 때 온 나라를 슬픔으로 파도치게 한 세월호사태

채 피어보지 못하고 떠나버린 소중한 우리아이들

어느 누구의 책임이었던가.

국격마저 떨어뜨린 치욕스런 해난사고가 채 아물기도 전에 다시 찾아 온

비보, 7명 구조 53명 실종 및 사망, 다시 베링해를 울리고 만 501사조호의

침몰 소식 앞에 우리 국민들은 망연할 수밖에 없다,

금년 한 해는 우리해운사에 가장 부끄러운 기록으로 남을 것 같다,

이 두 사건모두를 이제부터 따져 보고자 한다.

국민정서상 인재라 볼 때

세월호의 경우 우리나라 연안에서 두 번째로 물살이 센 진도수도를 통과하려면

특별법인 “선박직원법”상 선장은 협수로를 통과 할 때는 반드시 직접조선 의무를

부여 선교(브릿지)를 떠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고

“선원법”상 선장은 선사(선주)를 대신한다“로 규정한바 마지막 순간까지 승객(선원)

과 화물에 대한 무한책임을 부여하고 있으므로

선장은 곧 선박이며 선박과 운명을 같이해야 할 정도로 권한과 책임이 뒤따르는

것이다,

그러면 일련의 해난사고에 대해 선장의 대처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이미 알려진 대로 세월호의 선장은 선박의 침몰과정에서의 인명구조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탈출당시의 모습이 이를 웅변한다,

팬티를 입은 모습으로 미끄러져 내려오는 것을 보면 물살이 가장 강한 협수로에서

직접조선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조타실에서 팬티바람에

(그것도 아침09시경) 탈출하는 모습을 보면 선박을 직접 조종하지 않았으며

마지막 순간 승객 및 선원들의 탈출을 지휘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501오룡호의 경우는 사고해역이 일 년 중 하계(여름에서 초가을)를 제외하고 저기압이

상존하는 북극권에 가까운 베링해로 우리나라 원양어업 초창기 기상상황에 대한 무지로

수많은 원양어선과 선원들을 잃은 통한의 곳으로 겨울철로 접어들면 거대선마저 집어삼키는

그야말로 악마의 바다이기도하다,

일련의 예로 십 수년전 8만톤에 이르는 “한진인천”호(캄차카인근 해상)마저

침몰시킨 곳으로 기상예보에 재빨리 피항하지 못한 것이 통한으로 남을 듯하다,

선박의 노후와 별도로 아쉬움이 크게 남는 대목이다,

다만 마지막 선장의 통화 내용이 너무나 크게 메아리로 남는다,

“선원들을 저렇게 하였는데 내가 어찌 살겠습니까”. 결국 배와 함께 하겠다는

비장한 선장의 눈물이 우리네 가슴을 오래오래 저며 온다,

그렇게 두 사건에 대하여 같은 듯 다른 선장의 최후가 너무나 대비되어 바다를

아는 사람들을 다시금 아프게 한다,

* 에필로그

우리나라 해난사고 중 부산제주간 여객선인 남영호사고를 비롯하여 작은 어선들

대부분의 선장들은 “선주를 다시 볼 면목이 없다”하여 최후의 순간 선박과 함께 하였다,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들의 선장들이 묵시적으로 택한 길이기도 하다,

그만큼 선박과 선장은 한 몸이다, 를 의식하는 것이다,

* 위 내용은 작가의 견해로써 사실과 다를 수 있으니 이해 바랍니다,

20141208(2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