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쓰는 詩

김송배시인이 본 채환석시인의 시 세계

靑波 2014. 11. 1. 02:04

ㅁ 채환석의 시 세계

 

사랑과 그리움의 원류 그 시적 진실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시분과회장)

 

1. ‘그리움’의 깊이, 사모(思慕)의 정

현대인들의 복잡다단한 정서에서도 그리움을 지우고 살아갈 수는 없다. 아무리 세상이 다원화하고 정서가 황폐화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우리에겐 정이라는 따뜻한 진실이 내면에서 잔잔하게 흐르고 있어서 가끔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정서를 재창조하는 것이 우리 시인들의 책무이기도 하지만, 청파(靑波) 채환석 시집『숨비소리』에서 애절한 그리움의 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우리 인간들의 정서 가운데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는 절실성에 대해서 재음미하면서 형상화하려는 그의 사유(思惟)의 지향점을 이해하게 된다.

봄밤

비가내리고

꽃잎 떨어지는 소리에 신열이 높아

창문을 열면

 

어둠이 짙어도

제 발밑만 비추고 있는 가로등처럼

홀로 삭혀야 하는 그리움

 

비는 내리고

봄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가슴에 새긴

저 향기는 또 어찌할까

채환석 시인의 ‘그리움’은 위의 작품「사모(思慕)」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시간성과 다양한 관계 설정을 통해서 현현되고 있다. ‘봄밤’과 ‘비’와 ‘꽃잎 떨어지는 소리’ 또는 ‘향기가 시각적, 청각적, 후각적 이미지로 결합하여 하나의 그리움을 재생하고 있다.

이러한 시적 구도는 공감각적 이미지의 묘미를 살려낸 것으로 현대시 작법에서 요구하는 모든 문제들을 수용하면서 ‘그리움’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추출하고 있다. 또한 그는 소재를 ‘사모’라는 관념으로 설정하면서 내용은 사물이미지로 풀어냈다는 점도 간과(看過)할 수 없는 시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대체로 이 사물을 통한 그리움의 형상화를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다.

 

- 노래가 있는 숲에서 발원하여 / 언제나 / 부서지며 그리움으로 흐르는 강물 / 어디쯤에서 만날까 / 흩어진 기억의 퍼즐 앞에 / 허리를 꺾고 숨은 멎었다,(「하늘빛에 가을이 울더 니」중에서)

- 찾을 수 없는 시간위로 / 그리움이 고이는 공명의 모퉁이에 / 달빛을 베어 물며 흐느끼는 소리(「귀뚜라미 우는 사연」중에서)

- 갈잎이 눈발처럼 날리는 날 / 산야에 본치가 가냘 퍼 / 동그마니 찬이슬에 사위어도 / 애 써 그리움 묻고 떠난다,(「구절초」중에서)

그러나 ‘어둠’과 상관된 그리움도 다양하게 발현되고 있는데 이는 어둠으로(혹은 시간으로) 투영된 이미지가 보편적인 관념을 초월하는 심리적인 변환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 아직도 / 어둠을 걷어내지 못하고 / 별빛에 매달려 우는 것은 / 그리움이 깊어서이다 (「새벽」중에서)

- 그리움은 어둠을 타고 / 새록새록 / 달맞이꽃으로 수줍게 일어서서 / 허기진 고갯짓을 하 건만 / 기적(汽笛)은 왜 슬프게 우는지 모릅니다,(「물비늘」중에서)

- 어둠의 독배(毒杯)를 마신 잎새는 / 바람이 없어도 / 자꾸만 어깨를 들썩이며 / 당신의 숨결을 그리워해야만합니다(「눈물별은 은하에 젖고」중에서)

 

또한 그는 향수와 함께 아버지와 어머니에 관한 그리움도 짙게 현현되고 있는데 ‘어머니 / 당신은 이제 / 제 곁에 아니 계십니다(「어머니」중에서)’거나 ‘동구밖을 향해 화석이 되어 계신 어머니 / “에미를 보려고 먼 길 왔구나.” / 토닥이던 손길이 그립다(「귀향(歸鄕)」중에서)’는 언술이 그의 그리움에 대한 원류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2. 계절적 정서와 서정의 상보성

채환석 시인은 다시 계절에 대해서 민감한 시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에게서는 춘하추동 한 계절도 간과하지 않는 습성이 있다. 물론 계절의 변화가 곧 자연의 변화로 전환하는데서 그의 감응은 자연스럽게 동화하면서 작품으로 승화하게 된다.

우리는 자연과 시간과 인간이 공존하면서 삶을 영위한다. 자연과 시간은 영원하지만 인간은 유한하다. 그러나 인간이 자연과 시간의 조화에서 발생하는 오묘한 상황들을 시적으로 형상화해서 그 아름다운 서정을 메시지로 전달하는 능력을 가졌다.

채환석 시인은 이처럼 계절별로 나타나는 현상에서 미감의 언어를 투영하고 자신만의 주제를 탐색하고 있다. 봄이면 꽃에서 ‘원색의 아우성’을 듣고 여름에는 ‘마냥 울음이 지천인 계절’임을 본다. 그리고 ‘가을 앞에서’는 ‘스산한 갈바람 / 안으로만 여며드는 옷깃에 / 베어진 그리움’이 다시 찾아오고 있다.

그가 계절의 의미를 반추하는 형상은 다음과 같이 현현되고 있다.

 

너는

소리 없는 울림으로

다가와

 

깃털 같은 부드러움으로

애무하며

 

난향(蘭香) 같이 은근하게

 

초록의 바다를

숨 가쁜 열망으로

번져가는

 

원색의 아우성

--「화신(花信」전문

 

나무는 푸름을 움켜쥐고

그 푸름 속에서

화덕 같은 숨결로 토해내는 울음들

--「초하(初夏)를 건너며」중에서

 

타는 목마름으로 어둠을 마실 때

별빛은 술잔에 녹아

외로움이라 말하네,

--「가을강에 그리움을 묻고」중에서

 

공명(空鳴)을 머금은 하늘 끝자리

나목(裸木)의 가지를 스치는

높새바람 따라

너울대는 하얀 나비

--「첫눈은 향기로 내리고」중에서

 

그렇다. 채환석 시인의 사계(四季)는 자연의 아우성과 울음과 외로움이 공명을 이루고 있다. 이것이 우리 정서가 서정적으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상호보완의 여과장치를 갖는다. 서정성이 깃든 사유가 자연의 조화와 함께 다양하게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서정적 언어의 분사(噴射)에서 특이한 점을 읽을 수가 있다. 그것은 의문형 화법이다. 이와 같은 언술이나 시법은 주제의 접근을 더욱 가속화하거나 의문을 먼저 제시하고 주제를 적시하는 데 효과적인 어법이다. 대체로 다음과 같은 화법에서 우리는 그가 추출하고자 하는 이미지의 향방과 주제의 천착을 이해하게 된다.

 

- 메마른 가슴을 적시며 / 종소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더덕꽃은 피고」중에서)

- 무슨 꽃을 심을까 / 목이 긴 꽃기린을 심을까 / 소담한 바위취를 심을까 / 아니면 / 장미 의 유혹에 빠져볼까(「화분에 심은 꽃은」중에서)

- 마음의 눈이 열리지 않으니 / 보이는 것은 어둠 뿐 / 이순(耳順)에 올라 세월만 탓 하는 가(「이순(耳順)에 올라」중에서)

- 모두를 싣고 / 덜컹거리는 무심한 기적소리 / 나는 / 어디로 가는 걸까(「차향(茶香)」중 에서)

이처럼 그가 의문을 제기하는 동인(動因)은 전술한 바와 같이 주제의 근원을 탐색하기 위한 화법으로써 더욱 강렬한 어조(語調)로 주제에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적나라하게 표출한 의문은 「자화상」에서 나타나는데 이는 존재에 관한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고 있다.

 

아침마다 거울 앞에 서면

만나는 낮선 얼굴

 

밤새 자라난 수염의 크기만큼

나의 곁에서 멀어져간 시간들이

파르래 한 면도자국처럼

생체기로 남을 허무가 아프게 피어날 때

 

네가 나인가

내가 너인가

 

물안개 같은 성애를 걷어내고

아무리 부동으로 시간을 잡아맨들

반야용선은 어디 메 있는가,

 

서리 내린 귀밑머리에

까마귀 울음소리만 들리는데

 

여기에서 그는 ‘네가 나인가 / 내가 너인가’라는 인생의 가치관에 대한 의문이다. ‘멀어져 간 시간들’은 ‘허무’와 연결되면서 ‘물안개’, ‘까마귀 울음소리’ 등의 사물에서 추출한 이미지와의 상관성이 작품의 구도와 중심축을 조화롭게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스스로 던진 존재에 대한 의문은 ‘나는 언제까지나 행복한 고독이고 싶다(「해조음(海潮音)」중에서)’고 기원으로 해답을 적시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시적 진실은 많은 작품에서 일별할 수 있는데 ‘노을이 붉은 것은 / 저만치 죽음 같은 어둠이 오는 게 / 두렵기 때문이다(「노을이 붉은 것은」중에서)’ 라고 단정함으로써 그의 자연과 시간과의 화해가 인간의 존재탐구나 자아 성찰의 원류로 자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3. 삶을 통한 영혼과의 교감

채환석 시인은 실재(實在)의 자아나 삶을 통해서 시적으로 영혼과의 교감을 시도하고 있다. 우선 그의 삶에 관한 사유의 정립은 ‘인생은 허(虛)와 공(空)(「우리 그렇게 살아요」중에서)’’이라는 중심축을 설정하고 ‘이제야 / 어렴풋이 이치(理致)가 보여 / 눈을 감으니 세상이 보여(「호스피스 병동에서」중에서)’라고 자아를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삶의 향기(「코뚜레」중에서)’는 영혼과의 진실 교감을 위해서 때로는 지쳐 있거나 고독해 진다. 이는 ‘지친 영혼을 달래는 차가운 담금질(「대장장이」중에서)’이며 ‘가없는 영혼의 길을 홀로 가며 / 빈 하늘에 울음을 남(「새는 왜 우는가」중에서)’기기도 한다.

그가 보편적인 삶을 통해서 형이상적(形而上的)인 사유의 전환으로 영혼과의 대화를 탐색하는 것은 현대시가 필연으로 추구하려는 시정신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것은 일상적 삶이나 날마다 대할 수 있는 사물들을 고급한 이미지의 창출과 신선한 주제의 투영을 위한 그의 열정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의 영혼에 대한 집념과 교감은 어떻게 표징되고 있을까.

 

아직도 절망의 강을 건너지 못한 영혼은

빗속에서 또 한 방울의 눈물을 보태고야 맙니다,

임을 위한 기도를 아프게 심으며

--「임의 가슴에 기도를 심다」끝 연

 

아무리 비가 내려도

고독한 영혼은 가을빛으로 메말라가고

눈물로 얼룩진 성에 낀 창문에

부질없는 이름만 새깁니다,

--「빗물로 그린 사랑」끝 연

 

끝없이 영혼을 해갈(解渴)하는

순 하디 순한

너의 향기

--「국화길 따라서」끝 연

 

채환석 시인은 영혼과 비(雨)와의 관계를 중시하고 있다. 비는 눈물이거나 비감(悲感)의 언어를 동반한다. 그가 영혼과 비를 대칭적 스토리로 설정하는 것은 ‘아직도 절망의 강을 건너지 못했거나’ ‘부질 없’다는 어조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특히 ‘해갈’이라는 언어에서 그의 순정적 이미지를 공감하게 된다.

그는 다시 ‘고운 빛 영혼은 / 별빛이 되어 / 영겁(永劫)으로 피어나는 향기가 되었다(「천년의 사랑」중에서)’고 단정함으로써 ‘국화길’에서 본 ‘너의 향기’와 동류의 진실을 내포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일찍이 볼테르의 말대로 시는 영혼의 음악이다. 호라티우스의 시론에서도 시는 듣는 사람(혹은 읽는 사람)의 영혼을 뜻대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논지에 동의한다면 채환석 시인이 탐색하는 영혼과의 교감은 바로 그가 천착하는 진실을 탐구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는 점이다.

그가 갈구하는 영혼의 정의는 다음「등대(燈臺)」에서 결론을 제시하고 있다.

 

한 움큼의 빛만으로

암흑의 바다를 건너오는

숨 가쁜 영혼을 위해

 

가장 따뜻한 기도(祈禱)로 길을 열고

 

보드레한 봄 물결 따라

만선(滿船)의 기적(汽笛)에 귀 기울이며

 

바위 끝에

한 마리 백학(白鶴)이 되어

천년을 산다한 들 서럽다 할까

 

달빛아래 하얗게 부서지는 외로움이

은하(銀河)에 흘러도

 

끝내 인애(仁愛)로 남을

말없는 임이여

 

4. ‘시인의 바다’와 항해사의 화해

채환석 시인은 해양경찰청에 근무하는 공무원답게 바다를 사랑하고 바다와 생활한다. 이 시집에서 따로 ‘바다의 장’을 마련했듯이 바다와 상관된 작품을 많이 대할 수 있다. 시인들은 시적 발상이나 표현 언어 등에 이르기까지 자기 체험을 중시하게 되는데 바다와 접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바다에 관한 스토리와 이미지가 생성되기 마련이다.

그의 바다는 단순한 일상적 애환(哀歡)의 상징만이 아니고 바다는 항상 삶의 본류가 잠재해 있다. 그가 이 시집의 표제로 내세운「숨비소리」가 잘 말해주고 있다.

 

오늘도

해가 뜨는 곳으로

고래를 찾으러

 

가쁜 숨소리 내 뱉는

갈망의 몸뚱이가

 

텅 빈 주머니

채울 수 없는 슬픈 몸짓위로

어둠이 내려

 

파도에 항적(航跡)이 비틀대면

기도(祈禱)는

습관처럼 마스트에 내걸리고

 

가로누운 수평선에

허기진 뱃고동 낮게 울어

 

저 멀리

꿈결인 듯 안겨오는

물 휘파람소리

 

그의 바다에는 기도가 있다. 그 기도에는 ‘가쁜 숨소리’와 ‘슬픈 몸짓’의 ‘갈망’이 이 내재되어 있다. 이 갈망의 원천은 ‘어둠 속에서도 / 바다를 향하는 해(海)바라기는 / 밤새워 울고 있었다(「언덕배기」중에서)’는 상황에서 명징(明澄)해 진다.

언제나 바다에서 살아가고 바다를 향해서 무엇인가 그리며 생활하는 바다사람들의 간절한 희구가 적시되어 있지만 그는 항상 기도로 대한다. 다음과 같이 분화하고 있다.

 

- 한 획으로 양분된 / 하늘과 바다 사이에 센바람 불어 / 기도(祈禱)가 / 하얗게 부서져 내 려도 // 자유를 향한 마음 / 멈출 수 없는 // 비릿한 눈물의 정화(精華)가 모인 / 그곳은 / 살아있는 / 시인의 무덤이다(「시인의 바다」중에서)’

- 두 손 마주 모은 기도(祈禱)위로 / 행복한 / 귀항(歸港)의 깃발 펄럭이게 하소서 // 그렇 게 / 준비한 시간 속에 먼 길 달려온 항해(航海)가 / 잔잔한 사랑으로 / 오래 오래 머물게 하소서(「출항을 위한 기도」중에서)’

- 밤의 심장아래 / 기도로 건져 올린 그리움을 / 달무리에 묻고 // 알섬 그늘에 숨어 / 목 놓아 우는 슬픈 바다여(「파도소리」중에서)’

- 이것이 진정 마지막 이별이기를 // 기도 (祈禱)하는 화석(化石)을 / 새벽이 오는 바다에 묻습니다,(「그리움이 물결치는 바다」중에서)’

 

대체로 바다에는 시인의 기도가 그리움으로 승화하고 있다. 그 그리움이 수용하는 기도에는 언제나 항로, 항적, 항해 등의 수식어가 첨가되어 실생활의 바다가 휴머니즘으로 갈구하는 정서의 흐름을 읽을 수 있게 하고 있다.

이 시집 『숨비소리』에서와 같이 채환석 시인의 표정은 맑다. 그 맑은 표정에서 분출하는 의식의 흐름은 존재를 인식하거나 자아를 성찰하는 정서의 향방이 확고하게 정립되어 있다.

그가 험한 파도와 부딪치는 삶을 살아갈지라도 ‘새벽이 오는 해변을 찾아서 / 뜨거운 가슴으로 / 가없는 바다의 경계를 달려야 한다(「해조(海鳥)」 중에서)’ 그리고 ‘밀려오는 것은 해일(海溢)이 아니라 / 잊혀진 노래인 것이다 // 하루같이 바람에 등 기대며 / 그리워 우는 갈대처럼 / 나 또한 바다가 되고 파도가 되(「해일(海溢)이 머무는 곳」중에서)’어야 한다.

채환석 시인은 바다에서 삶과 시를 이야기하는 바다 시인이다. 그러나 그 풍광에 심취하면서 시간과 인간의 문제를 심도 있게 투영하고 그 가운데서 시적 진실을 탐구하는 의식이 확고하다.

그의 서정성과 자연과의 조화에서 인간적인 화해를 유도하는 부분도 그의 열정과 더불어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임어당의 말대로 시인은 분석이나 이론적인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만 자연 사물과의 대화를 통해서 인간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의 정서로 자신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방파제 끝에서 / 참았던 울음을 쏟으며 / 항해일지를 거두는 // 녹슨 닻줄에 매달려 / 현창(舷窓)을 넘어오던 / 모항(母港)의 / 불빛은 언제나 밝다(「정박(碇泊」중에서)’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시집에서는 더욱 성숙한 언어의 조탁과 주제의식의 승화로 좋은 작품 대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축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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